Ex) Article Title, Author, Keywords
Ex) Article Title, Author, Keywords
J Environ Health Sci. 2022; 48(1): 9-18
Published online February 28, 2022 https://doi.org/10.5668/JEHS.2022.48.1.9
Copyright © The Korean Society of Environmental Health.
안종주*
Correspondence to:Korea Occupational Safety & Health Agency, 400 Jongga-ro, Jung-gu, Ulsan 44429, Republic of Korea
Tel: +82-52-703-0501
Fax: +82-52-703-0301
E-mail: jjahnpark@hanmail.net
This is an open-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Non-Commercial License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4.0/), which permits unrestricted non-commercial use, distribution, and reproduction in any medium,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ㆍ Examining the history of environmental health disasters in Korea is meaningful in that it can improve the system that can protect the lives and health of citizens through lessons learned.
ㆍ Since 1970, large and small environmental diseases and environmental pollution incidents have occurred in our society.
ㆍ By examining the causes and development of these incidents, it is possible to estimate what role environmental health experts should play when similar incidents occur in the future.
In today’s civilization, it can be impossible to prevent disasters that cause large-scale human and material harm, and the environmental industry is not excepted from this. Over the last 50 years, several large and small environmental health catastrophes have occurred in Korea. Notable instances include the phenol pollution accident in the Nakdong River, the Hebei Spirit oil spill in Taean, Chungcheongnam-do, and the humidifier disinfectant disaster. Looking at these instances, it is clear that the government failed to prevent similar incidents and accidents after the tragedies. The government created and executed different policies to prevent such incidents and accidents, but the majority of them were highly fragmented. It is understandable that depending on the political and social level of the society in which the environmental health hazard incident/ accident happened, the investigation of the cause, countermeasures, and policy reaction may differ. To put it another way, the more authoritarian and non-democratic a political social system is, the more likely it is to cover up occurrences and accidents without a deep examination. This is in line with the members of society's level of political awareness and acknowledgment of the importance of life and safety. In 1985, when the Onsan pollution disease was discovered, and in 2011, when we recognized the realities of the humidifier disinfectant disaster, South Korea's political and social systems were entirely different.
KeywordsHumidifier disinfectant, phenol contamination, oil spill, pollution disease
한국 사회는 1960년대부터 압축적 산업화 과정을 시작했다. 이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주었지만 이와 함께 각종 환경오염 피해 사건을 낳았다. 이 때문에 시민의 건강과 생명, 그리고 삶의 질이 심각하게 훼손됐다. 하지만 이에 대한 기업과 정부, 사회의 관심이 부족해 환경오염 사건∙사고의 예방은 물론 그 대응, 그리고 피해자와 그 유가족에 대한 사후 배∙보상 등도 제때 하지 않거나 미흡하게 이루어져 이들은 장기간 큰 고통을 겪어야 했다.
환경오염에 의한 피해는 단시간에 벌어진 일회적 사고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 대부분의 신체적 건강피해는 인체에 들어온 유해인자가 누적되고 독성이 천천히 나타나기 때문에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서야 질병으로 드러난다. 이로 인해 사회가 시민의 건강 이상을 알아차리고 역학조사를 하더라도 이미 회복할 수 없는 수준의 생명 및 건강피해가 발생하고 난 뒤인 경우가 종종 있다.1) 또한 사회에서 발생한 환경오염 사건이 일회적 사고라 하더라도 오염에 노출된 공동체와 그 구성원들이 지닌 사회경제적 특징에 따라 오염피해가 장기간 지속될 수 있다.
본고는 한국환경보건학회 설립 50주년을 맞아 1970년대 이래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크고 작은 환경성 질환과 환경보건 참사를 복기하며 이들 사건의 배경과 진행 경과, 피해 규모, 우리 사회에 끼쳤던 영향을 고찰하고자 하였다.
2021년 9월과 10월에 Google Scholar database (https://scholar.google.com)와 Pubmed (https://pubmed.ncbi.nlm.nih.gov), 그리고 한국환경보건학회지(www.e-jehs.org)에 접속해 연구대상인 환경보건 위해 사건 관련 키워드(예, 온산병, 낙동강 페놀, 구미 불산 사고, 허베이스피리트(Hebei spirit), 가습기살균제(Humidifier disinfectant) 등)를 넣어 관련 문헌을 검색하였다. 또한 이들 사고∙사건과 관련이 있는 기관, 즉 환경부, 한국환경산업기술원,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의 공식 자료와 발주한 연구보고서를 홈페이지에서 확보하였다. 언론 보도 기사는 포털 다음(https://m.daum.net)에 접속해 관련 키워드를 넣어 검색해 활용하였다. 추가적으로 앞서 검색한 문헌과 자료를 바탕으로 연구주제와 관련된 내용을 환경단체의 홈페이지(예, ‘환경아카이브풀숲(ecoarchive.org)’)에서 원문 자료 중심으로 확보하고 내용을 검토한 뒤 연구 분석에 활용하였다.
관련 사례는 국내 발생한 환경보건 재난 중 인명과 환경에 피해 규모가 크거나 이후 관련 정책에 미친 영향 등 상징성을 고려하여 선택했다. 이에 대표적 환경보건 사건으로 ‘온산 공해병’, ‘낙동강페놀 오염 사고’, ‘충남 태안 허베이스피리트 호 기름 유출 사고’, ‘구미 불화수소 누출 사고’,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선정했다. 이는 40여년 언론인과 시민운동가로서의 필자 경험이 반영된 것이기에 사례 선택이 다소 주관적임을 밝혀둔다. 그러나, 이들 사건이 환경보건학회 회원을 포함한 환경보건 전문가에게 남긴 교훈을 메시지로 전달하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한다.
한국일보는 1985년 1월 18일자 사회면에 ‘온산공단 주변 어촌주민 500명 이타이이타이병 증세’란 기사를 내보냈다. 지금은 흔히들 ‘온산병’이라고 부르는 환경성 질환 집단 발생이 일반인에게 이 때 처음으로 널리 알려졌다. 1983년경부터 온산공단 인근 주민들에게서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는 괴질 증상이 나타나 ‘공해병’(당시는 이런 사회과학적 이름이 일반적이었으며 지금의 환경성 질환에 해당)이 아닐까라는 의문을 품고 이곳에서 활동해 온 환경단체가 언론사에 알려 보도된 것이다. 체계적으로 환경운동을 펼친 국내 최초의 민간조직인 한국공해문제연구소는 1982년 출범 직후부터 온산공단 주변 주민들의 공해 피해에 관심을 갖고 매달렸다.2)
온산공단은 울산석유화학공업단지와 더불어 1974년 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산읍 일대에 국가가 지정한 산업단지로 1978년 말 고려아연, 효성알루미늄이 가동을 시작하여 온산병이 사회문제가 된 1985년에는 석유화학 5개 공장, 비철금속 5개 공장 및 기타 2개 공장 등 12개 업체가 가동 중에 있었다. 1978년부터 인근 앞바다에서 기형 물고기가 잡히는 등 어업 피해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이어 1982년경부터 온산공단 주변 주민 약 1천명이 신경통과 전신마비, 피부병 증세를 집단적으로 겪기 시작했다.3) 1985년 1월 7일 한국공해문제연구소가 온산병 관련 첫 기자회견을 연데 이어 한국일보의 ‘이타이이타이병 증세’보도까지 나오자 그 다음날 환경청은 ‘온산괴질, 공해병 아니다’라는 발표를 했다. 그 뒤 정부의 역학조사에 문제가 있다는 언론의 지적에 이어 정밀한 역학조사를 촉구하는 언론의 사설 등이 잇따르자 그해 4월 환경청은 온산병은 공해병이 아닌 환경성 질환이라는 ‘말장난’ 같은 공식발표를 했다. 하지만 서울대 환경대학원 등이 환경청 의뢰를 받아 1년간 조사연구를 해 1985년 7월 제출한 최종보고서 ‘울산∙온산공단의 이주대책을 위한 조사연구’에서 온산공단 주민의 증상 호소율이 타 지역의 1.5배나 되며 이는 공해물질 누적 때문이라고 밝힘으로써 이 사건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되었다. 1985년 10월 정부는 주민 건강피해가 공단 때문임을 인정해 약 1,200억 원을 들여 울산∙온산공단 인근 8,300여 가구를 2 km 떨어진 남창지구 등으로 단계적으로 이주시키는 계획을 발표하고 그 뒤 실제로 7,467세대가 집단적으로 이주했다. 또 1986년 3월 정부는 울산∙온산공단을 ‘공해특별대책지역’으로 지정했다.4)
‘온산병’은 온산공단의 산업폐수와 대기오염물질로 인한 인근 어장과 농작물 등의 환경 피해에 이어 주민들에게 생겼던 피부질환, 근골격계∙신경계 및 호흡기 증상 등 다양한 비특이적 증상을 일컬으며 사실상 우리나라 최초의 공해병이다. 그러나, 당시의 시대적 상황은 환경병에 대한 공론화가 이뤄지기 어려운 제 5공화국 독재정권 시절로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국제 사회에 공해 문제가 알려지는 것을 정부는 극히 꺼렸다. 한편, 당시의 환경의학적 뒷받침도 미약했기에 온산병의 실체에 대한 과학적 규명이 명확히 이뤄지기보다 대기∙수질∙토양이 복합적으로 오염되어 환경성 질환이 발생된 것으로 추정되며5) 마무리되었다. 온산공단의 대부분 공장은 아황산가스를 다량 배출했지만 대기 중 유해가스 농도와 중금속 농도의 정확한 측정자료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렇듯 노출정보의 부재 때문에 유해인자와 주민이 호소하는 질병과의 인과관계를 밝혀내기가 쉽지 않았다. 더욱이 당시 환경보건 전문가들의 사회적 관심과 참여도가 낮아 사건의 해결 과정에 관여한 사람이 사실상 없었고 이 때문에 정확한 원인 규명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산병 투쟁과 이주 요구 운동은 환경운동의 형성기에 이루어낸 성과물6)로 꼽힌다. 이에 온산병 사건은 환경보건 측면보다는 환경운동 측면에서 많이 조명되고 있다. 즉, 온산병 사건은 공해피해가 발생한 후 일어난 주민운동 중 최초로 외부 지원 세력과 연대 투쟁을 일으킨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주민 지원 활동이 주민 조직에 기반을 두지 못한 채 일회적 활동에 머무르게 되고, 이후 정부와 심지어 환경운동 단체들조차 이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정부와 학계, 그리고 환경운동가를 포함하여 우리 사회는 온산병 피해자들을 방치했다는 부채를 지고 있다고 평가한다.7)
1991년 3월 14, 15일, 구미공단 내 두산전자에서 가전제품 회로기판 제작에 사용될 페놀이 대량으로 누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저장탱크에서 수지 생산 공장으로 이어지는 공급용 지상 파이프에 고장이 있었고 예비용 지하파이프를 가동하던 중 연결부에 누출이 발생해 배수구를 통해 옥계천으로 페놀 원액 30톤이 유출되었다. 페놀은 낙동강에 유입돼 대구 상수원 다사취수장으로 흘러들어 수돗물이 오염되었다. 사고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1차 사고에 따른 조업정지 후 다시 공장을 가동하던 중 4월 22일에 이번에는 지상 페놀 원액 공급라인 배관 이음새 고장으로 페놀 원액 약 1.3톤이 누출되었다. 이 중 1.0톤이 수거되었지만 약 0.3톤이 낙동강으로 유입돼 1차 사고와 같이 상수원수를 오염시키는 사고가 일어났다. 이 일련의 사고를 낙동강 페놀 오염사고(또는 사건)라고 부른다(환경단체는 사고를 일으킨 주체가 두산전자이므로 ‘구미 두산전자 페놀 유출 낙동강 오염사건’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상수원수에서 검출된 페놀 함량은 1차 사고 때 최고 0.05 ppm, 2차 사고 때 최고 0.096 ppm을 기록했고 정수를 거친 먹는물(수돗물)에서는 일부 지역에서 한때 최고 0.11 ppm을 기록했으며 평균 0.004 ppm이었다고 환경처는 밝혔다. 정부는 이를 근거로 인체에는 별다른 해가 없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1차 사고 당시 조사 시점은 사고 발생과 차이가 있어 페놀 함량이 과소평가되었을 가능성도 있다.8) 당시 대표적 환경단체인 공해추방운동연합은 3월 21일 금붕어 2 마리가 헤엄치고 있는 어항에 페놀 허용 기준치 용액을 넣자 20분 만에 발작을 일으키고 3시간 45분이 지나 모두 죽어 물 위로 떠오르는 실험을 공개적으로 벌였다.9) 이는 과학적 실험이라기보다 퍼포먼스에 가까운 행위였지만 임신부를 포함한 대구 시민들에게 페놀 수돗물의 유해성을 각인시키기에 충분했다.
페놀에 오염된 상수원수를 염소로 소독처리하면 클로로페놀이 만들어지고 엄청난 악취를 유발하게 된다. 사건 직후인 1991년 5월 대구 시민들을 대상으로 벌인 연구조사에서 페놀과 클로로페놀이 오염된 먹는물을 마신 사람들은 정상 수돗물을 마신 사람에 견줘 구역질, 구토, 설사, 복통, 두통, 입목 따끔거림, 피부 이상 등의 증상을 호소하는 비율이 3.5배가 되었으며 실제로 의료기관을 찾은 비율도 4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10) 대구 시민들은 안전한 식수를 구하기 위해 약수터로 몰리는 등 식수 부족으로 큰 불편을 겪었고 오염된 수돗물로 만든 음식들과 음료수 등도 모두 폐기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페놀은 낙동강을 타고 하류로 흘러 밀양과 함양, 부산까지 피해를 주는 등 낙동강 수계에 있는 1천만 영남지역 주민들이 페놀 오염 수돗물로 고통을 겪었다. 대구 시민들은 페놀 수돗물 사태로 피해를 입었다며 1만 3천 건, 170억 원 가량의 신체∙정신적 피해 신고를 했다. 그러나 실제 개인별 피해 보상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고 시민 1만 1천여 명에게 1인당 10만 원, 총 11억 원의 상징적 보상을 하는데 그쳤다.
사회적 관심뿐 아니라 환경보건 측면에서 주목했던 것은 당시 대구 시민들에게 공급된 먹는물에 함유된 페놀 또는 염화페놀을 임신부가 섭취했을 경우 태아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였다. 일부 임신부는 기형아 출산 공포로 낙태 수술까지 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하지만 페놀에 오염된 식수를 마셔 임신 20주 미만의 유산, 사산, 조산, 태내발육지연, 선천성 기형, 생후 1주 이내의 신생아 사망 등이 증가했다는 사실은 사고 발생 후 1년 사이에 대구 시내 5대 종합병원에서 출산한 모든 유산, 사산, 신생아 등 2만 여 사례를 조사한 결과 입증되지 않았다. 이 기간 중 선천성 기형아 출생률의 경우 보정을 거쳐 분석한 결과 출생아 1천 명당 오염지역 7.4, 비오염지역 8.4로 비오염지역이 더 높았으나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는 아니었다.11) 하지만 페놀 사태 후 임산부들은 유산의 공포와 기형아 출산, 출산 후유증 등의 위험을 들어 두산전자와 대구시를 상대로 1992년 11월 3억 원의 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이 소송은 2년 여 뒤인 1995년 2월 임산부 16명에게 총 1억 4천만 원을 위로금 명목으로 지급하고 법률적 책임은 묻지 않기로 하는 법원의 조정이 성립돼 일단락됐다.12)
이 사건으로 환경처 장∙차관이 경질되고, 박용곤 두산그룹 회장이 물러났다. 이 사건은 1985년 온산병 사건 이후 우리나라 최대의 환경오염 사건으로 꼽힌다. 이 사건의 직접 피해자인 대구 시민들을 시작으로 두산 제품 불매운동이 전국적으로 벌어졌다는 점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당시 불매 운동으로 두산그룹은 OB맥주 등 1천억 원이 넘는 매출이 감소하는 타격을 입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먹는물 수질검사 기준과 항목을 선진국 수준으로 강화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실제로 기준이 대폭 강화됐다. 또 먹는물 안전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어 고도정수처리 시설 확대와 4대강 수질 개선 등 맑은물 공급종합대책을 세웠다. 또 그해 5월 환경오염 또는 환경훼손 행위를 가중처벌하기 위해 환경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제정됐다. 이와 함께 이 사건은 건강권과 환경권에 대한 전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킨 계기가 됐으며 우리나라 환경 운동이 본격 활동을 하고 지역 풀뿌리 환경 단체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페놀 사고 이후에 낙동강에서는 수질이 전반적으로 상당히 개선되었지만, 디클로로메탄(1994), 1,4-다이옥산(2004, 2009), 퍼클로레이트(2006), 페놀(2008) 등 휘발성유기화합물질에 의한 수질오염사고가 계속 발생해13) 안전하고 깨끗한 물 확보를 위한 여정은 계속되고 있다.
2007년 12월 7일 삼성중공업 해상크레인과 유조선 허베이스피리트호가 충남 태안군 만리포 5마일 해상에서 충돌해 유조선의 원유탱크에 구멍이 뚫리면서 원유 12,547 kL가 해상에 유출되었다. 이는 국내에서 발생한 가장 큰 규모의 해양오염사고다. 원유 유출은 사고 발생 48시간이 지난 12월 9일 중단됐다. 이 사고로 충남 태안군 내 해안선 약 70.1 km가 기름에 오염됐고 특히 학암포~파도리 구간 35 km가 가장 오염이 심했다.14) 이 사건은 서해안 전체 환경과 생태계에 심각한 부정적 영향을 끼쳤고 총 4만여 가구 주민들이 피해를 입었으며, 태안군을 포함한 11개 시∙군이 특별재난구역으로 선포되었다.15)
이 재난에 대응하여 현지 주민 56만 명과 연인원 123만 명의 자원봉사자가 전국에서 모여 집중적인 해안 정화 활동을 했다. 여기에 생태계 회복에 유리한 서해안의 환경(예, ~9 m 조수간만 차이)은 발생된 재난 규모에 비해 사건이 비교적 신속히 수습되게 만들었다. 사고 후 생태계 영향을 조사한 결과 해수, 퇴적물 및 굴의 잔류 기름 농도는 각각 16개월, 33개월, 75개월이 흐른 뒤 배경 수준으로 빠르게 떨어졌다. 또한 조간대 및 조하대 지역의 손상된 저서 군집은 약 6년 후에 완전히 회복되었다. 허베이스피리트호가 대규모 기름 유출로 인해 손상된 환경과 생태계가 예상보다 빠르게 회복된 것이다.16)
대규모 환경재난을 맞이하여 환경보건학적 대응도 체계적으로 이뤄졌다. 특히, 누구(또는 어떤 집단)에게서 어떤 질병이 어떤 규모로 발생했고 그 건강 손실이 어떠한지를 파악하기 위해 잠재적 위해 대상 집단을 장기 추적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다른 사건∙사고 또는 참사와 이 사고가 다른 가장 특징 중 하나가 우리나라 건강 위해 사건 역사상 가장 대규모의 자원봉사자와 관민 방제 작업자가 위험에 노출되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사고 직후 인근 주민과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자원봉사자들이 온몸을 던져 해안가로 밀려온 기름을 정화하는 작업을 벌였다. 이 때문에 기름 오염지역 어린이를 포함한 주민뿐 아니라 기름 제거 작업에 동원된 군인과 전문방제업체 직원 등과 자원봉사자들의 신체적∙정신적 건강 영향까지 아울러 조사가 이루어졌다. 여러 연구에서 전반적으로 기름 유출의 영향은 어린 아이들에게 더 심각했고 유출 후 5년까지 어린이의 천식 증상과 관련이 있었다.17) 기름 유출 현장에서 더 가까운 곳에 사는 어린이는 기름 유출 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어린이보다 초당 호기량(FEV1)이 현저히 낮은 등 폐 기능이 떨어졌고 기도과민성 유병률과 알레르기성 비염의 유병률이 더 높았다.18) 오염된 해안선에서 학교까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속한 어린이는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아동에 비해 우울증 증상 위험이 유의하게 더 높았다.19) 또 노출이 심한 지역에서 거주하는 남녀 모두 호흡기 질환과 정신 건강 문제가 증가했다.20) 방제작업을 오래한 사람일수록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재난을 겪은 주민들의 질병부담(BOD)도 살펴보았다. 이를 위해 질조정수명(QALY) 또는 장애조정수명(DALY)을 정량화해 장애로 인해 손실된 연수(YLD)를 계량화한 결과 YLD는 14,724 DALY로 남녀 간 큰 차이는 없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PTSD와 우울증을 포함한 정신질환의 YLD는 남성이 여성보다 높았지만 여성은 남성보다 천식과 알레르기(비염, 피부염, 결막염)에서 YLD가 더 높았다. 40대가 천식과 알레르기의 영향이 가장 컸고, 20대가 정신질환 부담이 가장 컸다. 유출 현장과 근접한 지역 주민일수록 질병 부담이 증가했다.21) 한편, 사고 후 약 1년 후, 정화 작업에 참여했던 442명을 검사한 결과 이들은 요통과 호흡기 증상은 1.8~2.1개월로 비교적 짧게 고통을 겪은 반면 두통, 눈∙피부∙신경전정 증상으로 6.9~9.7개월이라는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고생을 한 것으로 분석됐다.22)
허베이스피리트호 유류오염사고로 피해를 입은 주민과 해양환경 등에 대하여 신속하고 적절한 수습과 복구 대책을 수립∙시행해 피해지역 주민들의 재기와 해양환경을 하루빨리 복원하기 위해 2008년 3월 ‘허베이스피리트호 유류오염사고 피해주민의 지원 및 해양환경의 복원 등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해 2008년 3월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그러나 주민들은 자신들의 요구 사항을 충족하지 못한다며 법률 개정을 요구했고 결국 2013년 법률이 개정되어 신속한 보상 절차와 정부의 생활비 지원을 규정하고 기름 유출 사고에서 삼성중공업의 책임을 명확히 했다.23) 주민 피해를 복원하기 위한 이런 대응책에도 불구하고 기름 유출 사고가 일어난 지역 가운데는 굴 양식을 해오던 마을의 경우 굴 양식에 대한 피해보상금의 분배를 놓고 주민 갈등이 첨예하게 벌어져 시간이 지나면서 갈등과 냉소적 감정의 확산으로 이어졌고 이는 어촌마을의 재난 복원력의 약화를 초래하기도 했다.24)
2012년 9월 27일 오후 3시 40분경, 경북 구미 제4 국가산업단지에서 불소 화학제품 생산 업체인 ㈜휴브글로벌에서 탱크로리에 있던 불화수소를 공장 내 설비로 옮기는 과정에서 근로자의 실수로 탱크로리의 밸브가 열리며 불화수소 가스가 유출되었다. 이 사고로 작업자 5명이 현장 또는 병원 이송 중 사망하고 18명이 부상을 당했다. 더욱이 가스 누출 이후 신속한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아 산업단지 인근 주민 거주 지역까지 가스가 퍼지면서 농작물이 죽고 가축이 가스 중독 증상을 보이는 등 피해가 속출하였다.25) 10월 21일까지 총 12,243명이 인근 지역 의료기관과 구미시가 마련한 임시진료소에서 진료를 받거나 검진을 받았다. 이 중 병원에 입원한 사람은 급성 호흡기∙위장관계∙신경학적 건강 문제를 겪었고 비입원환자는 주로 상기도 자극과 관련한 급성 증상을 보였다.26) 사건 직후 다양한 증세의 환자발생은 불화수소 노출로 인한 광범위한 피해범위를 보여준다. 이는 국내 화학물질 누출 사고 중 가장 큰 규모였다. 정부는 사고 발생 12일 뒤인 10월 8일 구미시 봉산리 일대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불화수소(Hydrogen fluoride)가 물과 결합하면 무색의 불산(Hydrofluoric acid) 수용액이 된다. 불화수소 농도가 40% 이상이면 불산은 공기 중 흄 형태로 존재한다. 불화수소 및 이를 1% 이상 함유한 혼합물질은 유해물질관리법 상 유독물로 취급된다. 불화수소 기체를 흡입하면 기관과 식도가 심하게 자극된다. 또한, 자각증상 없이 노출 1, 2일 후 고열, 오한 등 몸살같은 증상에 이어 흉곽 압박감, 수포음, 청색증 등이 유발될 수 있다. 또한 불산은 눈에 접촉하면 화상과 각막괴사를 일으켜 실명할 수 있고, 피부에 접촉하면 화상과 각종 피부염을 일으킨다. 단시간 노출에 의해서도 심한 증상이 발생한다. 노출 당시의 불화수소(불산) 농도와 노출 시간 정도에 비례해 건강 영향이 심각해진다.27)
이 사고를 계기로 2013년 5월 화학물질관리법이 제정되어 2015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이 법 제정 이후에도 화학물질 사고는 계속되고 있다. 사고 발생한 이후 4년간 연도별 사망∙부상자 현황을 보면 2014년이 222명으로 가장 높았고 2016년(10월까지) 121명, 2015년 117명, 2013년 46명 순으로 나타났다. 전체 화학물질 사고 건수와 인명피해 가운데 유출∙누출로 인한 사고가 각각 72%와 75%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사망자만 놓고 보면 대부분 화재∙폭발이 원인이었다.28)
정부는 이 사고를 계기로 2013년 7월 “화학물질 안전관리 종합대책”을 마련한 데 이어 2013년 9월 화학물질안전원을 신설했다. 또 환경부, 노동부, 소방청, 산업통상자원부, 지자체 등이 화학 사고에 공동으로 대응하기 위해 범부처 합동방재센터를 여수, 시흥, 서산, 울산, 충주, 구미, 익산 등 전국 7곳에 만들어 예방 및 대응에 힘쓰고 있다. 이런 노력에도 화학 사고는 계속되고 있다. 가장 최근에 발생한 대표적 사례는 한화토탈 공장에서 일어난 스티렌모노머 유출 사고를 꼽을 수 있다. 2019년 5월 17~18일 충남 서산의 한화토탈 스티렌모노머 공장에서 유증기 유출 사고가 발생해 주민 2,612명, 근로자 1,028명 등 3천 여 명이 지역 병의원을 내원해 진료를 받았다. 법제도 개선과 감시대응 조직 강화만으로 화학물질 유출 사고를 막는데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1960~1980년대 조성된 전국 각지의 화학산업단지 내 공장의 노후화로 인해 사고가 빈발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만큼 사고 예방을 위한 새로운 대책이 필요하다.
2011년 8월 31일, 질병관리본부는 2006년 이래 어린이와 임산부에 집단적으로 발생했던 중증 간질성 폐질환이 가습기살균제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는 역학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사건은 시간이 갈수록 엄청난 피해 규모를 드러내면서 대한민국 최대, 최악의 환경 비극으로서, 국가가 공식 인정한 환경보건 참사가 됐다. 2011년 4월 말, 서울아산병원 의료진은 원인미상 폐질환으로 다수의 산모가 죽어가고 있다며 원인을 밝혀달라고 당시 질병관리본부에 역학조사를 의뢰한 바 있고, 이에 앞서 소아과 의사들은 2008년과 2009년 두 차례에 걸쳐 영유아와 어린이로부터 동일 연령집단에게 발견되기 어려운 특이적 간질성 폐질환이 다발하고 있다고 학계에 논문으로 보고했다. 하지만 이들은 바이러스 등 감염성 병원체만을 추적하고 화학물질에 의한 폐질환 가능성을 전혀 의심하지 못했으며 원인 파악을 위해 정부에 역학조사 의뢰도 하지 않아 가습기살균제가 원인임을 보다 일찍 밝혀내는데 실패했다.
가습기살균제는 1994년 ㈜유공이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 성분을 사용해 ‘가습기메이트’란 상품명으로 시장에 첫선을 보인 이래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 등 여러 성분을 사용해 옥시레킷벤키저의 ‘옥시싹싹 가습기당번’ 등 40여 종이 2011년까지 판매됐다. 가습기살균제에 쓰인 살생물질은 CMIT/MIT, PHMG,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 등 4개 성분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으나 염화벤잘코늄(BKC)과 이염화이소시아눌산나트륨(NaDCC) 등 여러 물질이 다양하게 사용됐다.29) 액체와 고체형, 부착형 등 여러 형태의 가습기살균제 제품이 나왔다. 2000년대에는 많은 가정에서 실내가 건조하기 쉬운 겨울에 가습기와 함께 가습기살균제를 생활필수품처럼 사용됐다. 그러나 이들 물질은 샴푸, 물티슈 등 피부에 바르고 씻는 제품을 포함한 여러 생활화학 제품에 사용됐지만 흡입 노출될 경우 다른 경로로 노출되는 것에 비해 독성이 매우 강하다는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 회사 가운데 단 한 곳도 제품 출시 전에 인체 호흡 독성 여부를 제대로 살피지 않거나 그 단서를 무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당시 정부 어느 부처도 출시 전 안전 검증은 물론이고 사후 관리와 검증을 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져 기업과 함께 국가의 책임 여부가 도마에 올랐다.
가습기살균제가 간질성 폐질환의 원인으로 지목된 이후 정부는 한국환경보건학회, 환경독성보건학회 등 여러 학회 및 국립환경과학원 등 국가연구기관과 함께 가습기살균제 성분, 판매∙사용량, 관련 질환, 독성 기전, 환자 수, 사망자 수 등을 조사했다. 2021년 9월말 현재까지 밝혀지거나 추정된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규모는 엄청나다. 가습기살균제 노출 인구 규모와 건강 피해를 입은 사람에 대한 추정은 조사 시기와 방식, 대상 표본수, 추정 방법 등에 따라 상당한 차이가 난다. 이 가운데 최근에 이루어진 것을 보면 가습기살균제에 노출된 총인구를 350~400만 명으로 산출하고 건강피해를 입은 총인구를 35~40만 명으로 추정한 연구결과30)가 있는 반면 노출 인구를 894만 명, 건강피해 인구를 95만 명으로 각각 추산한 연구도31) 있는 등 서로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는 2020년 7월 연구 용역을 바탕으로 보도자료를 내어 노출 인구를 627만 명, 건강피해 경험자를 67만 명으로 각각 추산해 발표한 바 있다.32)
이런 엄청난 추산 피해 규모에 견줘 실제로 피해 신고를 했거나 정부한테서 공식 피해 인정을 받은 숫자는 적다. 2021년 10월 25일 현재 7,576명(사망 1,717명)이 피해 신고를 해 이 가운데 4,258명(사망 1,027명)이 피해 인정을 받았다.33) 정부가 인정하는 피해 구제 대상 질환은 폐질환을 시작으로 해 그동안 천식, 태아피해, 아동∙성인 간질성폐질환, 기관지확장증, 폐렴 등으로 확대되어 왔으며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법 개정∙시행으로 2020년 9월부터는 폭넓은 구제가 가능하게끔 ‘역학적 상관관계’가 규명되는 질환으로 구제 대상을 확대해 비염, 후두염, 기관지염 등도 구제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34)
가습기살균제 사건이 불거진 뒤 2016년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 기업 책임자 등에 대한 검찰 수사와 국회 국정조사가 이루어졌다. 또 피해 판정과 피해 구제, 진상규명, 유사 사건 재발 방지를 위해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2013년), 생활화학제품 및 살생물제의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2018년),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2017년), 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2017년)이 제정돼 6개월 내지 2년의 유예기간을 둔 뒤 시행됐다.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이에 따라 만들어진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가 2018년 12월부터 진상규명 등의 조사를 하고 있으며 위원회는 2022년 6월에 활동이 종료된다. 환경보건 사건과 관련해 이러한 사례는 지금까지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법 제정∙시행뿐만 아니라 생활화학제품의 사용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건강 피해 사례를 조기에 파악해 대처하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에서 중독센터와 같은 조직을 만들어 대처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전문가들과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등에서 나오고 있다.35)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인체에 해를 끼칠 가능성이 있는 미생물을 죽여 건강해지기 위해 가정에서 사용하다 도리어 많은 인간이 목숨을 잃거나 건강을 해친 매우 독특한 사건이자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환경보건 재난이다.36) 하지만 사건이 인지된 직후 기업과 국가는 적극적으로 피해 신고를 받거나 가습기살균제 노출로 생길 수 있는 관련 질환에 대한 연구를 집중적으로 하지 않았다. 또한 참사 관련 책임자들에 대한 수사에 소극적으로 임해 피해자∙유가족과 기업∙정부 간 사회적 갈등이 심각하게 벌어졌고 지금도 완전히 해결되지 못한 부분이 많다. 2021년 8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단체들과 제조∙유통업체는 양측의 의견을 수렴하여 조정위원회를 구성하고 피해 보상 등을 받지 못한 사례를 해결하기로 했지만,37) 사건의 실태가 17년간 드러나지 않아 피해와 피해 자격을 증명하기가 쉽지 않고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모두가 만족시킬 수 있는 해법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
지금까지 살펴본 5개 주요 환경보건 위해 사건∙사고의 발생원인과 유해인자, 건강 피해 규모 등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Table 1과 같다.
Table 1 Cause, the scale and main contents of health damage, etc. by major environmental health disasters
Environmental health incident | Year | Cause | Hazardous agents | Health damage | Main content |
---|---|---|---|---|---|
Onsan disease | 1985 | Onsan industrial complex air pollution | Sulfur dioxide, heavy metals | 1,000 people suffered from neuralgia, general paralysis, and skin diseases | First environmental disease 7,467 households migrated collectively |
Nakdong river phenol contamination | 1991 | Doosan electronics phenol leakage | Phenol, chlorophenol | 13,000 Daegu citizens complained of increased abnormal symptoms | The opportunity to arouse national interest in the right to health and environment. |
Hebei Spirit oil spill accident | 2007 | Oil tanker oil spill | VOCs etc. | Volunteers and oil removers complained of various abnormal symptoms and mental health, increased asthma in children, etc. | 11 cities and counties declared special disaster zones, largest volunteer in history for oil removal |
Gumi hydrogen fluoride leakage | 2012 | Hydrogen fluoride leak from Hub Global, Gumi Industrial Complex | Hydrogen fluoride | 5 killed, 18 injured Medical examination for 12,243 residents | Korea’s largest chemical spill damage |
Humidifier disinfectant disaster | 1994~2011 | Use of humidifier disinfectant in humidifier | PHMG, PGH, CMIT/MIT | More than 4,258 people, including 1,027 deaths, were officially recognized by the government | The largest environmental health damage case in Korea |
198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5개의 주요 환경보건 위해 관련 사건∙사고와 재난의 발생과 원인, 전개 과정과 대처 등을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시대별, 사건별 발생 지역과 피해 대상, 피해 규모, 그리고 사건 뒤 대처 등이 서로 다른 부분도 많이 있지만 상당 부분 유사한 점이 있으며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 또한 공통분모가 있다.
먼저 과거에 발생한 사건일수록 정부의 소극적 대응과 전문가 집단의 참여 부족으로 환경성 질환의 정확한 원인 규명과 피해 실태 등을 밝히는데 실패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온산병 사건이 대표적이다. 환경보건 관련 사건의 실체를 규명하는 일은 그 당시만 해도 과학∙학문의 영역이라기보다는 반공해 운동 내지는 반정부적 요소가 강한 환경단체와 이들 단체에서 활동한 극히 일부 전문가의 몫이었다. 전문가가 개인적 또는 집단적으로 조사를 수행하기에 연구 역량이나 인적 역량 모두 높지 않았다. 더욱이 사건 이후로도 국가는 물론 민간에서도 진실을 파헤치려는 적극적 시도가 없었다. 그 결과 온산병의 정확한 실체는 영구 미제로 남았다. 반면 최근에 일어난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경우 과거와는 달리 환경보건 전문가들의 적극성이 상대적으로 돋보였다. 대표적으로 한국환경보건학회는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비용을 갹출하면서 2012년 1월부터 5월까지 피해 가정 74곳의 방문조사를 통해 95건의 피해 실태를 파악하고 분석한 뒤 ‘가습기살균제 피해의 노출 실태와 건강영향조사 보고서(2012.06)’를 펴냈다.38) 당시 조사연구는 이후 국제학술지에 2편의 논문으로 발표된다.39,40) 이런 활동은 2013년 정부가 가습기살균제 피해 신고 가정을 대상으로 공식 첫 조사를 하게 만드는 밑거름 역할을 했다. 이 사례는 앞으로 환경보건 위해 사건이 발생했을 때 전문가들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교범과도 같은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습기살균제가 처음 출시되고 사건이 드러나기까지 17년간 환경보건 전문가들을 포함한 관련 분야 전문가와 단체, 기관 어느 누구(곳)도 가습기살균제의 위해성에 대해 의심을 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참사를 예방하거나 더 일찍 발견하지 못한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둘째, 환경보건 사건 가운데 대부분은 전문가들이 발생을 예측해 사전예방하기 쉽지 않은 성격을 띠고 있다. 낙동강 페놀 오염 사고와 허베이스피리트호 기름유출 사고, 구미 ㈜휴브글로벌 불화수소 누출 사고 등은 돌발적 사고 성격이 짙어 이런 유형의 사고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이 사건 발생으로 인해 주민 등이 입을 건강 피해의 정도와 유해물질의 노출 정도에 따른 독성 여부와 강도에 대해 최대한 빠르고 정확하게 분석해 이를 효과적인 방식으로 알려주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와 관련해 적극적인 노력이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 특히 낙동강 페놀 오염 사고 때 지역∙중앙환경단체들이 앞다퉈 경쟁적 활동을 하면서 일부 환경단체가 물고기가 들어 있는 수조에 페놀을 투여해 폐사하는 모습을 보여준 일이 있었다. 이는 과학적 방법과 동물윤리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행위였다. 이에 전문가들은 당시 환경단체의 이런 퍼포먼스가 비과학적이라는 사실을 적극 알리는 비판적 대응을 하지 않음으로써 많은 대구 지역 주민들이 불안과 공포를 느끼게 만들었고 일부 임신부는 태아의 생명을 낙태시키는 반인륜적 일까지 벌어졌다. 따라서 앞으로 이와 유사한 일이 벌어질 경우 전문가들이 즉각 개입해 불필요한 공포와 불안이 조성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셋째, 지난 40여 년간 일어난 많은 환경보건 위해 사건∙사고에서 지역 주민 등과 결합한 시민단체나 환경단체의 역할이 매우 컸다. 하지만 온산병 사건 등에서 보듯이 시간이 흐를수록 이들 단체의 활동 동력이 약화해 결국은 주민들의 고통을 온전히 받아 이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이는 환경∙시민단체만의 문제는 결코 아니다. 전문가 집단도 마찬가지다. 환경보건 위해 사건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하나가 되어 원인과 피해 질환, 관련 제도의 문제점과 사건의 책임을 규명해야만 풀릴 수 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와 관련해서도 의학, 보건학, 독성학, 법학, 사회학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이 사건의 발생 원인과 해결과정, 그리고 사회적 교훈에 대해 지속적으로 조사∙연구하는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41) 이는 거의 모든 환경보건 사건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지적이다.
끝으로 미국 등에서는 화학물질 흡입 노출로 인해 간질성 폐질환이 직장에서 주로 일어났고, 가정에서도 가끔 발생했다는 보고가 있어 화학물질의 용도나 형태 변경으로 노동자 등 노출자들이 건강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을 1970~1980년대부터 인식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선진국에서는 가정용 가습기를 깨끗하게 유지하는 것을 강조하지만 물에 살생물제와 함께 섞어 사용하는 것은 금기로 여겼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노출 경로가 바뀌게 되면 심각한 건강 영향을 유발할 수 있다는 인식 없이 독성을 지닌 살균제 성분의 화학물질을 가습기로 확대해 사용했다는 외국 전문가의 비판42)은 기업과 정부뿐만 아니라 그 위험성을 조기에 경고하지 못한 전문가들도 귀담아 들어야 할 대목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198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5개의 우리나라 주요 환경보건 위해 관련 사건∙사고와 재난의 발생과 원인, 전개 과정과 대처 등에서 기업의 안전에 대한 투자와 정부의 치밀하고 엄격한 관리, 그리고 전문가의 적극적인 참여가 매우 중요함을 알 수 있었다.
범죄와 교통사고뿐만 아니라, 환경오염 피해 사건 등 인명∙건강 피해를 유발하는 모든 사건∙사고와 관련해 가장 중요한 것은 사전예방이다. 하지만 ‘위험사회’로 특징지을 수 있는 현대 사회에서 이들 위험의 완전한 예방은 달성하기 어려운 이상적 목표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사건∙사고가 재난과 같은 대규모로 일어나지 않도록 감시체계를 강화해 조기에 이를 알아차리는 사회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매우 중요해졌다. 즉 기업과 정부는 사고가 늘 일어날 수 있다는 전제 하에 이중∙삼중의 대응 시스템을 마련해 가동해야 하며 여기에 관련 인력을 충분히 투입하고 비용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이는 지금까지 살펴본 가습기살균제 참사 등 여러 환경위해 사건에서도 잘 드러났다.
또 사회와 시민들에게 큰 충격과 영향을 준 환경보건 위해 사건이 벌어지면 정부는 유사 사건∙사고 재발을 막기 위한 각종 제도 정비를 하고 관련 정책을 만들어 시행한다. 하지만 이는 매우 단편적이고 임시방편에 머무는 경우가 많아 실제 유사 사건∙사고의 재발을 막는데 실패한다. 1991년 낙동강 페놀 오염 사고 이전에도 수돗물 오염 사건이 일어났다. 1990년 트리할로메탄 파동과 1989년 중금속 검출 사건이 대표적인 보기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는 사건이 일어난 뒤 대응책을 마련하기보다는 이를 예방할 수 있는 더 근본적인 제도를 사전에 마련하거나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와 함께 환경보건 위해 사건∙사고가 벌어진 사회의 정치∙사회적 수준에 따라 원인 진상 규명과 피해 대책, 정책 대응이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도 지난 50년간 일어난 주요 사건 조명을 통해 파악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권위주의적이고 비민주적 성향이 강한 정치사회 체제일수록 사건∙사고 발생의 내막을 깊이 들여다보지 않고 대충 덮고 가는 경향이 강하고 개방되고 투명하며 민주적인 정치∙사회 체제일수록 원인 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에 힘쓴다는 것이다. 이는 그 사회를 구성하는 구성원들의 정치의식 수준과 생명과 안전을 중요하게 여기는 인식과 문화와 맥이 닿아 있다. 온산병이 드러난 1985년과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실체를 알게 된 2011년의 우리나라 정치∙사회 체제는 완전히 달랐으며 생명과 안전에 대한 시민의 관심이 높을수록 환경보건학자 등 전문가들도 더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뛰어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미래 한국에서는 급속한 산업 변화와 국민의 기대 수준에 걸맞은 대책이 선제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환경보건 전문가들은 환경보건 사건∙사고 원인 규명과 위해 분석뿐만 아니라 우리나라가 세계적 환경보건 모범국이 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갖추는데도 관심을 가지고 적극 관여해야 한다.
No potential conflict of interest relevant to this article was reported.
안종주(이사장)
J Environ Health Sci. 2022; 48(1): 9-18
Published online February 28, 2022 https://doi.org/10.5668/JEHS.2022.48.1.9
Copyright © The Korean Society of Environmental Health.
Korea Occupational Safety & Health Agency
Correspondence to:Korea Occupational Safety & Health Agency, 400 Jongga-ro, Jung-gu, Ulsan 44429, Republic of Korea
Tel: +82-52-703-0501
Fax: +82-52-703-0301
E-mail: jjahnpark@hanmail.net
This is an open-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Non-Commercial License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4.0/), which permits unrestricted non-commercial use, distribution, and reproduction in any medium,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In today’s civilization, it can be impossible to prevent disasters that cause large-scale human and material harm, and the environmental industry is not excepted from this. Over the last 50 years, several large and small environmental health catastrophes have occurred in Korea. Notable instances include the phenol pollution accident in the Nakdong River, the Hebei Spirit oil spill in Taean, Chungcheongnam-do, and the humidifier disinfectant disaster. Looking at these instances, it is clear that the government failed to prevent similar incidents and accidents after the tragedies. The government created and executed different policies to prevent such incidents and accidents, but the majority of them were highly fragmented. It is understandable that depending on the political and social level of the society in which the environmental health hazard incident/ accident happened, the investigation of the cause, countermeasures, and policy reaction may differ. To put it another way, the more authoritarian and non-democratic a political social system is, the more likely it is to cover up occurrences and accidents without a deep examination. This is in line with the members of society's level of political awareness and acknowledgment of the importance of life and safety. In 1985, when the Onsan pollution disease was discovered, and in 2011, when we recognized the realities of the humidifier disinfectant disaster, South Korea's political and social systems were entirely different.
Keywords: Humidifier disinfectant, phenol contamination, oil spill, pollution disease
한국 사회는 1960년대부터 압축적 산업화 과정을 시작했다. 이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주었지만 이와 함께 각종 환경오염 피해 사건을 낳았다. 이 때문에 시민의 건강과 생명, 그리고 삶의 질이 심각하게 훼손됐다. 하지만 이에 대한 기업과 정부, 사회의 관심이 부족해 환경오염 사건∙사고의 예방은 물론 그 대응, 그리고 피해자와 그 유가족에 대한 사후 배∙보상 등도 제때 하지 않거나 미흡하게 이루어져 이들은 장기간 큰 고통을 겪어야 했다.
환경오염에 의한 피해는 단시간에 벌어진 일회적 사고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 대부분의 신체적 건강피해는 인체에 들어온 유해인자가 누적되고 독성이 천천히 나타나기 때문에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서야 질병으로 드러난다. 이로 인해 사회가 시민의 건강 이상을 알아차리고 역학조사를 하더라도 이미 회복할 수 없는 수준의 생명 및 건강피해가 발생하고 난 뒤인 경우가 종종 있다.1) 또한 사회에서 발생한 환경오염 사건이 일회적 사고라 하더라도 오염에 노출된 공동체와 그 구성원들이 지닌 사회경제적 특징에 따라 오염피해가 장기간 지속될 수 있다.
본고는 한국환경보건학회 설립 50주년을 맞아 1970년대 이래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크고 작은 환경성 질환과 환경보건 참사를 복기하며 이들 사건의 배경과 진행 경과, 피해 규모, 우리 사회에 끼쳤던 영향을 고찰하고자 하였다.
2021년 9월과 10월에 Google Scholar database (https://scholar.google.com)와 Pubmed (https://pubmed.ncbi.nlm.nih.gov), 그리고 한국환경보건학회지(www.e-jehs.org)에 접속해 연구대상인 환경보건 위해 사건 관련 키워드(예, 온산병, 낙동강 페놀, 구미 불산 사고, 허베이스피리트(Hebei spirit), 가습기살균제(Humidifier disinfectant) 등)를 넣어 관련 문헌을 검색하였다. 또한 이들 사고∙사건과 관련이 있는 기관, 즉 환경부, 한국환경산업기술원,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의 공식 자료와 발주한 연구보고서를 홈페이지에서 확보하였다. 언론 보도 기사는 포털 다음(https://m.daum.net)에 접속해 관련 키워드를 넣어 검색해 활용하였다. 추가적으로 앞서 검색한 문헌과 자료를 바탕으로 연구주제와 관련된 내용을 환경단체의 홈페이지(예, ‘환경아카이브풀숲(ecoarchive.org)’)에서 원문 자료 중심으로 확보하고 내용을 검토한 뒤 연구 분석에 활용하였다.
관련 사례는 국내 발생한 환경보건 재난 중 인명과 환경에 피해 규모가 크거나 이후 관련 정책에 미친 영향 등 상징성을 고려하여 선택했다. 이에 대표적 환경보건 사건으로 ‘온산 공해병’, ‘낙동강페놀 오염 사고’, ‘충남 태안 허베이스피리트 호 기름 유출 사고’, ‘구미 불화수소 누출 사고’,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선정했다. 이는 40여년 언론인과 시민운동가로서의 필자 경험이 반영된 것이기에 사례 선택이 다소 주관적임을 밝혀둔다. 그러나, 이들 사건이 환경보건학회 회원을 포함한 환경보건 전문가에게 남긴 교훈을 메시지로 전달하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한다.
한국일보는 1985년 1월 18일자 사회면에 ‘온산공단 주변 어촌주민 500명 이타이이타이병 증세’란 기사를 내보냈다. 지금은 흔히들 ‘온산병’이라고 부르는 환경성 질환 집단 발생이 일반인에게 이 때 처음으로 널리 알려졌다. 1983년경부터 온산공단 인근 주민들에게서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는 괴질 증상이 나타나 ‘공해병’(당시는 이런 사회과학적 이름이 일반적이었으며 지금의 환경성 질환에 해당)이 아닐까라는 의문을 품고 이곳에서 활동해 온 환경단체가 언론사에 알려 보도된 것이다. 체계적으로 환경운동을 펼친 국내 최초의 민간조직인 한국공해문제연구소는 1982년 출범 직후부터 온산공단 주변 주민들의 공해 피해에 관심을 갖고 매달렸다.2)
온산공단은 울산석유화학공업단지와 더불어 1974년 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산읍 일대에 국가가 지정한 산업단지로 1978년 말 고려아연, 효성알루미늄이 가동을 시작하여 온산병이 사회문제가 된 1985년에는 석유화학 5개 공장, 비철금속 5개 공장 및 기타 2개 공장 등 12개 업체가 가동 중에 있었다. 1978년부터 인근 앞바다에서 기형 물고기가 잡히는 등 어업 피해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이어 1982년경부터 온산공단 주변 주민 약 1천명이 신경통과 전신마비, 피부병 증세를 집단적으로 겪기 시작했다.3) 1985년 1월 7일 한국공해문제연구소가 온산병 관련 첫 기자회견을 연데 이어 한국일보의 ‘이타이이타이병 증세’보도까지 나오자 그 다음날 환경청은 ‘온산괴질, 공해병 아니다’라는 발표를 했다. 그 뒤 정부의 역학조사에 문제가 있다는 언론의 지적에 이어 정밀한 역학조사를 촉구하는 언론의 사설 등이 잇따르자 그해 4월 환경청은 온산병은 공해병이 아닌 환경성 질환이라는 ‘말장난’ 같은 공식발표를 했다. 하지만 서울대 환경대학원 등이 환경청 의뢰를 받아 1년간 조사연구를 해 1985년 7월 제출한 최종보고서 ‘울산∙온산공단의 이주대책을 위한 조사연구’에서 온산공단 주민의 증상 호소율이 타 지역의 1.5배나 되며 이는 공해물질 누적 때문이라고 밝힘으로써 이 사건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되었다. 1985년 10월 정부는 주민 건강피해가 공단 때문임을 인정해 약 1,200억 원을 들여 울산∙온산공단 인근 8,300여 가구를 2 km 떨어진 남창지구 등으로 단계적으로 이주시키는 계획을 발표하고 그 뒤 실제로 7,467세대가 집단적으로 이주했다. 또 1986년 3월 정부는 울산∙온산공단을 ‘공해특별대책지역’으로 지정했다.4)
‘온산병’은 온산공단의 산업폐수와 대기오염물질로 인한 인근 어장과 농작물 등의 환경 피해에 이어 주민들에게 생겼던 피부질환, 근골격계∙신경계 및 호흡기 증상 등 다양한 비특이적 증상을 일컬으며 사실상 우리나라 최초의 공해병이다. 그러나, 당시의 시대적 상황은 환경병에 대한 공론화가 이뤄지기 어려운 제 5공화국 독재정권 시절로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국제 사회에 공해 문제가 알려지는 것을 정부는 극히 꺼렸다. 한편, 당시의 환경의학적 뒷받침도 미약했기에 온산병의 실체에 대한 과학적 규명이 명확히 이뤄지기보다 대기∙수질∙토양이 복합적으로 오염되어 환경성 질환이 발생된 것으로 추정되며5) 마무리되었다. 온산공단의 대부분 공장은 아황산가스를 다량 배출했지만 대기 중 유해가스 농도와 중금속 농도의 정확한 측정자료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렇듯 노출정보의 부재 때문에 유해인자와 주민이 호소하는 질병과의 인과관계를 밝혀내기가 쉽지 않았다. 더욱이 당시 환경보건 전문가들의 사회적 관심과 참여도가 낮아 사건의 해결 과정에 관여한 사람이 사실상 없었고 이 때문에 정확한 원인 규명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산병 투쟁과 이주 요구 운동은 환경운동의 형성기에 이루어낸 성과물6)로 꼽힌다. 이에 온산병 사건은 환경보건 측면보다는 환경운동 측면에서 많이 조명되고 있다. 즉, 온산병 사건은 공해피해가 발생한 후 일어난 주민운동 중 최초로 외부 지원 세력과 연대 투쟁을 일으킨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주민 지원 활동이 주민 조직에 기반을 두지 못한 채 일회적 활동에 머무르게 되고, 이후 정부와 심지어 환경운동 단체들조차 이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정부와 학계, 그리고 환경운동가를 포함하여 우리 사회는 온산병 피해자들을 방치했다는 부채를 지고 있다고 평가한다.7)
1991년 3월 14, 15일, 구미공단 내 두산전자에서 가전제품 회로기판 제작에 사용될 페놀이 대량으로 누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저장탱크에서 수지 생산 공장으로 이어지는 공급용 지상 파이프에 고장이 있었고 예비용 지하파이프를 가동하던 중 연결부에 누출이 발생해 배수구를 통해 옥계천으로 페놀 원액 30톤이 유출되었다. 페놀은 낙동강에 유입돼 대구 상수원 다사취수장으로 흘러들어 수돗물이 오염되었다. 사고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1차 사고에 따른 조업정지 후 다시 공장을 가동하던 중 4월 22일에 이번에는 지상 페놀 원액 공급라인 배관 이음새 고장으로 페놀 원액 약 1.3톤이 누출되었다. 이 중 1.0톤이 수거되었지만 약 0.3톤이 낙동강으로 유입돼 1차 사고와 같이 상수원수를 오염시키는 사고가 일어났다. 이 일련의 사고를 낙동강 페놀 오염사고(또는 사건)라고 부른다(환경단체는 사고를 일으킨 주체가 두산전자이므로 ‘구미 두산전자 페놀 유출 낙동강 오염사건’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상수원수에서 검출된 페놀 함량은 1차 사고 때 최고 0.05 ppm, 2차 사고 때 최고 0.096 ppm을 기록했고 정수를 거친 먹는물(수돗물)에서는 일부 지역에서 한때 최고 0.11 ppm을 기록했으며 평균 0.004 ppm이었다고 환경처는 밝혔다. 정부는 이를 근거로 인체에는 별다른 해가 없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1차 사고 당시 조사 시점은 사고 발생과 차이가 있어 페놀 함량이 과소평가되었을 가능성도 있다.8) 당시 대표적 환경단체인 공해추방운동연합은 3월 21일 금붕어 2 마리가 헤엄치고 있는 어항에 페놀 허용 기준치 용액을 넣자 20분 만에 발작을 일으키고 3시간 45분이 지나 모두 죽어 물 위로 떠오르는 실험을 공개적으로 벌였다.9) 이는 과학적 실험이라기보다 퍼포먼스에 가까운 행위였지만 임신부를 포함한 대구 시민들에게 페놀 수돗물의 유해성을 각인시키기에 충분했다.
페놀에 오염된 상수원수를 염소로 소독처리하면 클로로페놀이 만들어지고 엄청난 악취를 유발하게 된다. 사건 직후인 1991년 5월 대구 시민들을 대상으로 벌인 연구조사에서 페놀과 클로로페놀이 오염된 먹는물을 마신 사람들은 정상 수돗물을 마신 사람에 견줘 구역질, 구토, 설사, 복통, 두통, 입목 따끔거림, 피부 이상 등의 증상을 호소하는 비율이 3.5배가 되었으며 실제로 의료기관을 찾은 비율도 4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10) 대구 시민들은 안전한 식수를 구하기 위해 약수터로 몰리는 등 식수 부족으로 큰 불편을 겪었고 오염된 수돗물로 만든 음식들과 음료수 등도 모두 폐기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페놀은 낙동강을 타고 하류로 흘러 밀양과 함양, 부산까지 피해를 주는 등 낙동강 수계에 있는 1천만 영남지역 주민들이 페놀 오염 수돗물로 고통을 겪었다. 대구 시민들은 페놀 수돗물 사태로 피해를 입었다며 1만 3천 건, 170억 원 가량의 신체∙정신적 피해 신고를 했다. 그러나 실제 개인별 피해 보상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고 시민 1만 1천여 명에게 1인당 10만 원, 총 11억 원의 상징적 보상을 하는데 그쳤다.
사회적 관심뿐 아니라 환경보건 측면에서 주목했던 것은 당시 대구 시민들에게 공급된 먹는물에 함유된 페놀 또는 염화페놀을 임신부가 섭취했을 경우 태아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였다. 일부 임신부는 기형아 출산 공포로 낙태 수술까지 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하지만 페놀에 오염된 식수를 마셔 임신 20주 미만의 유산, 사산, 조산, 태내발육지연, 선천성 기형, 생후 1주 이내의 신생아 사망 등이 증가했다는 사실은 사고 발생 후 1년 사이에 대구 시내 5대 종합병원에서 출산한 모든 유산, 사산, 신생아 등 2만 여 사례를 조사한 결과 입증되지 않았다. 이 기간 중 선천성 기형아 출생률의 경우 보정을 거쳐 분석한 결과 출생아 1천 명당 오염지역 7.4, 비오염지역 8.4로 비오염지역이 더 높았으나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는 아니었다.11) 하지만 페놀 사태 후 임산부들은 유산의 공포와 기형아 출산, 출산 후유증 등의 위험을 들어 두산전자와 대구시를 상대로 1992년 11월 3억 원의 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이 소송은 2년 여 뒤인 1995년 2월 임산부 16명에게 총 1억 4천만 원을 위로금 명목으로 지급하고 법률적 책임은 묻지 않기로 하는 법원의 조정이 성립돼 일단락됐다.12)
이 사건으로 환경처 장∙차관이 경질되고, 박용곤 두산그룹 회장이 물러났다. 이 사건은 1985년 온산병 사건 이후 우리나라 최대의 환경오염 사건으로 꼽힌다. 이 사건의 직접 피해자인 대구 시민들을 시작으로 두산 제품 불매운동이 전국적으로 벌어졌다는 점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당시 불매 운동으로 두산그룹은 OB맥주 등 1천억 원이 넘는 매출이 감소하는 타격을 입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먹는물 수질검사 기준과 항목을 선진국 수준으로 강화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실제로 기준이 대폭 강화됐다. 또 먹는물 안전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어 고도정수처리 시설 확대와 4대강 수질 개선 등 맑은물 공급종합대책을 세웠다. 또 그해 5월 환경오염 또는 환경훼손 행위를 가중처벌하기 위해 환경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제정됐다. 이와 함께 이 사건은 건강권과 환경권에 대한 전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킨 계기가 됐으며 우리나라 환경 운동이 본격 활동을 하고 지역 풀뿌리 환경 단체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페놀 사고 이후에 낙동강에서는 수질이 전반적으로 상당히 개선되었지만, 디클로로메탄(1994), 1,4-다이옥산(2004, 2009), 퍼클로레이트(2006), 페놀(2008) 등 휘발성유기화합물질에 의한 수질오염사고가 계속 발생해13) 안전하고 깨끗한 물 확보를 위한 여정은 계속되고 있다.
2007년 12월 7일 삼성중공업 해상크레인과 유조선 허베이스피리트호가 충남 태안군 만리포 5마일 해상에서 충돌해 유조선의 원유탱크에 구멍이 뚫리면서 원유 12,547 kL가 해상에 유출되었다. 이는 국내에서 발생한 가장 큰 규모의 해양오염사고다. 원유 유출은 사고 발생 48시간이 지난 12월 9일 중단됐다. 이 사고로 충남 태안군 내 해안선 약 70.1 km가 기름에 오염됐고 특히 학암포~파도리 구간 35 km가 가장 오염이 심했다.14) 이 사건은 서해안 전체 환경과 생태계에 심각한 부정적 영향을 끼쳤고 총 4만여 가구 주민들이 피해를 입었으며, 태안군을 포함한 11개 시∙군이 특별재난구역으로 선포되었다.15)
이 재난에 대응하여 현지 주민 56만 명과 연인원 123만 명의 자원봉사자가 전국에서 모여 집중적인 해안 정화 활동을 했다. 여기에 생태계 회복에 유리한 서해안의 환경(예, ~9 m 조수간만 차이)은 발생된 재난 규모에 비해 사건이 비교적 신속히 수습되게 만들었다. 사고 후 생태계 영향을 조사한 결과 해수, 퇴적물 및 굴의 잔류 기름 농도는 각각 16개월, 33개월, 75개월이 흐른 뒤 배경 수준으로 빠르게 떨어졌다. 또한 조간대 및 조하대 지역의 손상된 저서 군집은 약 6년 후에 완전히 회복되었다. 허베이스피리트호가 대규모 기름 유출로 인해 손상된 환경과 생태계가 예상보다 빠르게 회복된 것이다.16)
대규모 환경재난을 맞이하여 환경보건학적 대응도 체계적으로 이뤄졌다. 특히, 누구(또는 어떤 집단)에게서 어떤 질병이 어떤 규모로 발생했고 그 건강 손실이 어떠한지를 파악하기 위해 잠재적 위해 대상 집단을 장기 추적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다른 사건∙사고 또는 참사와 이 사고가 다른 가장 특징 중 하나가 우리나라 건강 위해 사건 역사상 가장 대규모의 자원봉사자와 관민 방제 작업자가 위험에 노출되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사고 직후 인근 주민과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자원봉사자들이 온몸을 던져 해안가로 밀려온 기름을 정화하는 작업을 벌였다. 이 때문에 기름 오염지역 어린이를 포함한 주민뿐 아니라 기름 제거 작업에 동원된 군인과 전문방제업체 직원 등과 자원봉사자들의 신체적∙정신적 건강 영향까지 아울러 조사가 이루어졌다. 여러 연구에서 전반적으로 기름 유출의 영향은 어린 아이들에게 더 심각했고 유출 후 5년까지 어린이의 천식 증상과 관련이 있었다.17) 기름 유출 현장에서 더 가까운 곳에 사는 어린이는 기름 유출 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어린이보다 초당 호기량(FEV1)이 현저히 낮은 등 폐 기능이 떨어졌고 기도과민성 유병률과 알레르기성 비염의 유병률이 더 높았다.18) 오염된 해안선에서 학교까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속한 어린이는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아동에 비해 우울증 증상 위험이 유의하게 더 높았다.19) 또 노출이 심한 지역에서 거주하는 남녀 모두 호흡기 질환과 정신 건강 문제가 증가했다.20) 방제작업을 오래한 사람일수록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재난을 겪은 주민들의 질병부담(BOD)도 살펴보았다. 이를 위해 질조정수명(QALY) 또는 장애조정수명(DALY)을 정량화해 장애로 인해 손실된 연수(YLD)를 계량화한 결과 YLD는 14,724 DALY로 남녀 간 큰 차이는 없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PTSD와 우울증을 포함한 정신질환의 YLD는 남성이 여성보다 높았지만 여성은 남성보다 천식과 알레르기(비염, 피부염, 결막염)에서 YLD가 더 높았다. 40대가 천식과 알레르기의 영향이 가장 컸고, 20대가 정신질환 부담이 가장 컸다. 유출 현장과 근접한 지역 주민일수록 질병 부담이 증가했다.21) 한편, 사고 후 약 1년 후, 정화 작업에 참여했던 442명을 검사한 결과 이들은 요통과 호흡기 증상은 1.8~2.1개월로 비교적 짧게 고통을 겪은 반면 두통, 눈∙피부∙신경전정 증상으로 6.9~9.7개월이라는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고생을 한 것으로 분석됐다.22)
허베이스피리트호 유류오염사고로 피해를 입은 주민과 해양환경 등에 대하여 신속하고 적절한 수습과 복구 대책을 수립∙시행해 피해지역 주민들의 재기와 해양환경을 하루빨리 복원하기 위해 2008년 3월 ‘허베이스피리트호 유류오염사고 피해주민의 지원 및 해양환경의 복원 등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해 2008년 3월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그러나 주민들은 자신들의 요구 사항을 충족하지 못한다며 법률 개정을 요구했고 결국 2013년 법률이 개정되어 신속한 보상 절차와 정부의 생활비 지원을 규정하고 기름 유출 사고에서 삼성중공업의 책임을 명확히 했다.23) 주민 피해를 복원하기 위한 이런 대응책에도 불구하고 기름 유출 사고가 일어난 지역 가운데는 굴 양식을 해오던 마을의 경우 굴 양식에 대한 피해보상금의 분배를 놓고 주민 갈등이 첨예하게 벌어져 시간이 지나면서 갈등과 냉소적 감정의 확산으로 이어졌고 이는 어촌마을의 재난 복원력의 약화를 초래하기도 했다.24)
2012년 9월 27일 오후 3시 40분경, 경북 구미 제4 국가산업단지에서 불소 화학제품 생산 업체인 ㈜휴브글로벌에서 탱크로리에 있던 불화수소를 공장 내 설비로 옮기는 과정에서 근로자의 실수로 탱크로리의 밸브가 열리며 불화수소 가스가 유출되었다. 이 사고로 작업자 5명이 현장 또는 병원 이송 중 사망하고 18명이 부상을 당했다. 더욱이 가스 누출 이후 신속한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아 산업단지 인근 주민 거주 지역까지 가스가 퍼지면서 농작물이 죽고 가축이 가스 중독 증상을 보이는 등 피해가 속출하였다.25) 10월 21일까지 총 12,243명이 인근 지역 의료기관과 구미시가 마련한 임시진료소에서 진료를 받거나 검진을 받았다. 이 중 병원에 입원한 사람은 급성 호흡기∙위장관계∙신경학적 건강 문제를 겪었고 비입원환자는 주로 상기도 자극과 관련한 급성 증상을 보였다.26) 사건 직후 다양한 증세의 환자발생은 불화수소 노출로 인한 광범위한 피해범위를 보여준다. 이는 국내 화학물질 누출 사고 중 가장 큰 규모였다. 정부는 사고 발생 12일 뒤인 10월 8일 구미시 봉산리 일대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불화수소(Hydrogen fluoride)가 물과 결합하면 무색의 불산(Hydrofluoric acid) 수용액이 된다. 불화수소 농도가 40% 이상이면 불산은 공기 중 흄 형태로 존재한다. 불화수소 및 이를 1% 이상 함유한 혼합물질은 유해물질관리법 상 유독물로 취급된다. 불화수소 기체를 흡입하면 기관과 식도가 심하게 자극된다. 또한, 자각증상 없이 노출 1, 2일 후 고열, 오한 등 몸살같은 증상에 이어 흉곽 압박감, 수포음, 청색증 등이 유발될 수 있다. 또한 불산은 눈에 접촉하면 화상과 각막괴사를 일으켜 실명할 수 있고, 피부에 접촉하면 화상과 각종 피부염을 일으킨다. 단시간 노출에 의해서도 심한 증상이 발생한다. 노출 당시의 불화수소(불산) 농도와 노출 시간 정도에 비례해 건강 영향이 심각해진다.27)
이 사고를 계기로 2013년 5월 화학물질관리법이 제정되어 2015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이 법 제정 이후에도 화학물질 사고는 계속되고 있다. 사고 발생한 이후 4년간 연도별 사망∙부상자 현황을 보면 2014년이 222명으로 가장 높았고 2016년(10월까지) 121명, 2015년 117명, 2013년 46명 순으로 나타났다. 전체 화학물질 사고 건수와 인명피해 가운데 유출∙누출로 인한 사고가 각각 72%와 75%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사망자만 놓고 보면 대부분 화재∙폭발이 원인이었다.28)
정부는 이 사고를 계기로 2013년 7월 “화학물질 안전관리 종합대책”을 마련한 데 이어 2013년 9월 화학물질안전원을 신설했다. 또 환경부, 노동부, 소방청, 산업통상자원부, 지자체 등이 화학 사고에 공동으로 대응하기 위해 범부처 합동방재센터를 여수, 시흥, 서산, 울산, 충주, 구미, 익산 등 전국 7곳에 만들어 예방 및 대응에 힘쓰고 있다. 이런 노력에도 화학 사고는 계속되고 있다. 가장 최근에 발생한 대표적 사례는 한화토탈 공장에서 일어난 스티렌모노머 유출 사고를 꼽을 수 있다. 2019년 5월 17~18일 충남 서산의 한화토탈 스티렌모노머 공장에서 유증기 유출 사고가 발생해 주민 2,612명, 근로자 1,028명 등 3천 여 명이 지역 병의원을 내원해 진료를 받았다. 법제도 개선과 감시대응 조직 강화만으로 화학물질 유출 사고를 막는데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1960~1980년대 조성된 전국 각지의 화학산업단지 내 공장의 노후화로 인해 사고가 빈발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만큼 사고 예방을 위한 새로운 대책이 필요하다.
2011년 8월 31일, 질병관리본부는 2006년 이래 어린이와 임산부에 집단적으로 발생했던 중증 간질성 폐질환이 가습기살균제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는 역학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사건은 시간이 갈수록 엄청난 피해 규모를 드러내면서 대한민국 최대, 최악의 환경 비극으로서, 국가가 공식 인정한 환경보건 참사가 됐다. 2011년 4월 말, 서울아산병원 의료진은 원인미상 폐질환으로 다수의 산모가 죽어가고 있다며 원인을 밝혀달라고 당시 질병관리본부에 역학조사를 의뢰한 바 있고, 이에 앞서 소아과 의사들은 2008년과 2009년 두 차례에 걸쳐 영유아와 어린이로부터 동일 연령집단에게 발견되기 어려운 특이적 간질성 폐질환이 다발하고 있다고 학계에 논문으로 보고했다. 하지만 이들은 바이러스 등 감염성 병원체만을 추적하고 화학물질에 의한 폐질환 가능성을 전혀 의심하지 못했으며 원인 파악을 위해 정부에 역학조사 의뢰도 하지 않아 가습기살균제가 원인임을 보다 일찍 밝혀내는데 실패했다.
가습기살균제는 1994년 ㈜유공이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 성분을 사용해 ‘가습기메이트’란 상품명으로 시장에 첫선을 보인 이래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 등 여러 성분을 사용해 옥시레킷벤키저의 ‘옥시싹싹 가습기당번’ 등 40여 종이 2011년까지 판매됐다. 가습기살균제에 쓰인 살생물질은 CMIT/MIT, PHMG,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 등 4개 성분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으나 염화벤잘코늄(BKC)과 이염화이소시아눌산나트륨(NaDCC) 등 여러 물질이 다양하게 사용됐다.29) 액체와 고체형, 부착형 등 여러 형태의 가습기살균제 제품이 나왔다. 2000년대에는 많은 가정에서 실내가 건조하기 쉬운 겨울에 가습기와 함께 가습기살균제를 생활필수품처럼 사용됐다. 그러나 이들 물질은 샴푸, 물티슈 등 피부에 바르고 씻는 제품을 포함한 여러 생활화학 제품에 사용됐지만 흡입 노출될 경우 다른 경로로 노출되는 것에 비해 독성이 매우 강하다는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 회사 가운데 단 한 곳도 제품 출시 전에 인체 호흡 독성 여부를 제대로 살피지 않거나 그 단서를 무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당시 정부 어느 부처도 출시 전 안전 검증은 물론이고 사후 관리와 검증을 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져 기업과 함께 국가의 책임 여부가 도마에 올랐다.
가습기살균제가 간질성 폐질환의 원인으로 지목된 이후 정부는 한국환경보건학회, 환경독성보건학회 등 여러 학회 및 국립환경과학원 등 국가연구기관과 함께 가습기살균제 성분, 판매∙사용량, 관련 질환, 독성 기전, 환자 수, 사망자 수 등을 조사했다. 2021년 9월말 현재까지 밝혀지거나 추정된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규모는 엄청나다. 가습기살균제 노출 인구 규모와 건강 피해를 입은 사람에 대한 추정은 조사 시기와 방식, 대상 표본수, 추정 방법 등에 따라 상당한 차이가 난다. 이 가운데 최근에 이루어진 것을 보면 가습기살균제에 노출된 총인구를 350~400만 명으로 산출하고 건강피해를 입은 총인구를 35~40만 명으로 추정한 연구결과30)가 있는 반면 노출 인구를 894만 명, 건강피해 인구를 95만 명으로 각각 추산한 연구도31) 있는 등 서로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는 2020년 7월 연구 용역을 바탕으로 보도자료를 내어 노출 인구를 627만 명, 건강피해 경험자를 67만 명으로 각각 추산해 발표한 바 있다.32)
이런 엄청난 추산 피해 규모에 견줘 실제로 피해 신고를 했거나 정부한테서 공식 피해 인정을 받은 숫자는 적다. 2021년 10월 25일 현재 7,576명(사망 1,717명)이 피해 신고를 해 이 가운데 4,258명(사망 1,027명)이 피해 인정을 받았다.33) 정부가 인정하는 피해 구제 대상 질환은 폐질환을 시작으로 해 그동안 천식, 태아피해, 아동∙성인 간질성폐질환, 기관지확장증, 폐렴 등으로 확대되어 왔으며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법 개정∙시행으로 2020년 9월부터는 폭넓은 구제가 가능하게끔 ‘역학적 상관관계’가 규명되는 질환으로 구제 대상을 확대해 비염, 후두염, 기관지염 등도 구제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34)
가습기살균제 사건이 불거진 뒤 2016년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 기업 책임자 등에 대한 검찰 수사와 국회 국정조사가 이루어졌다. 또 피해 판정과 피해 구제, 진상규명, 유사 사건 재발 방지를 위해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2013년), 생활화학제품 및 살생물제의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2018년),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2017년), 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2017년)이 제정돼 6개월 내지 2년의 유예기간을 둔 뒤 시행됐다.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이에 따라 만들어진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가 2018년 12월부터 진상규명 등의 조사를 하고 있으며 위원회는 2022년 6월에 활동이 종료된다. 환경보건 사건과 관련해 이러한 사례는 지금까지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법 제정∙시행뿐만 아니라 생활화학제품의 사용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건강 피해 사례를 조기에 파악해 대처하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에서 중독센터와 같은 조직을 만들어 대처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전문가들과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등에서 나오고 있다.35)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인체에 해를 끼칠 가능성이 있는 미생물을 죽여 건강해지기 위해 가정에서 사용하다 도리어 많은 인간이 목숨을 잃거나 건강을 해친 매우 독특한 사건이자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환경보건 재난이다.36) 하지만 사건이 인지된 직후 기업과 국가는 적극적으로 피해 신고를 받거나 가습기살균제 노출로 생길 수 있는 관련 질환에 대한 연구를 집중적으로 하지 않았다. 또한 참사 관련 책임자들에 대한 수사에 소극적으로 임해 피해자∙유가족과 기업∙정부 간 사회적 갈등이 심각하게 벌어졌고 지금도 완전히 해결되지 못한 부분이 많다. 2021년 8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단체들과 제조∙유통업체는 양측의 의견을 수렴하여 조정위원회를 구성하고 피해 보상 등을 받지 못한 사례를 해결하기로 했지만,37) 사건의 실태가 17년간 드러나지 않아 피해와 피해 자격을 증명하기가 쉽지 않고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모두가 만족시킬 수 있는 해법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
지금까지 살펴본 5개 주요 환경보건 위해 사건∙사고의 발생원인과 유해인자, 건강 피해 규모 등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Table 1과 같다.
Table 1 . Cause, the scale and main contents of health damage, etc. by major environmental health disasters.
Environmental health incident | Year | Cause | Hazardous agents | Health damage | Main content |
---|---|---|---|---|---|
Onsan disease | 1985 | Onsan industrial complex air pollution | Sulfur dioxide, heavy metals | 1,000 people suffered from neuralgia, general paralysis, and skin diseases | First environmental disease 7,467 households migrated collectively |
Nakdong river phenol contamination | 1991 | Doosan electronics phenol leakage | Phenol, chlorophenol | 13,000 Daegu citizens complained of increased abnormal symptoms | The opportunity to arouse national interest in the right to health and environment. |
Hebei Spirit oil spill accident | 2007 | Oil tanker oil spill | VOCs etc. | Volunteers and oil removers complained of various abnormal symptoms and mental health, increased asthma in children, etc. | 11 cities and counties declared special disaster zones, largest volunteer in history for oil removal |
Gumi hydrogen fluoride leakage | 2012 | Hydrogen fluoride leak from Hub Global, Gumi Industrial Complex | Hydrogen fluoride | 5 killed, 18 injured Medical examination for 12,243 residents | Korea’s largest chemical spill damage |
Humidifier disinfectant disaster | 1994~2011 | Use of humidifier disinfectant in humidifier | PHMG, PGH, CMIT/MIT | More than 4,258 people, including 1,027 deaths, were officially recognized by the government | The largest environmental health damage case in Korea |
198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5개의 주요 환경보건 위해 관련 사건∙사고와 재난의 발생과 원인, 전개 과정과 대처 등을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시대별, 사건별 발생 지역과 피해 대상, 피해 규모, 그리고 사건 뒤 대처 등이 서로 다른 부분도 많이 있지만 상당 부분 유사한 점이 있으며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 또한 공통분모가 있다.
먼저 과거에 발생한 사건일수록 정부의 소극적 대응과 전문가 집단의 참여 부족으로 환경성 질환의 정확한 원인 규명과 피해 실태 등을 밝히는데 실패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온산병 사건이 대표적이다. 환경보건 관련 사건의 실체를 규명하는 일은 그 당시만 해도 과학∙학문의 영역이라기보다는 반공해 운동 내지는 반정부적 요소가 강한 환경단체와 이들 단체에서 활동한 극히 일부 전문가의 몫이었다. 전문가가 개인적 또는 집단적으로 조사를 수행하기에 연구 역량이나 인적 역량 모두 높지 않았다. 더욱이 사건 이후로도 국가는 물론 민간에서도 진실을 파헤치려는 적극적 시도가 없었다. 그 결과 온산병의 정확한 실체는 영구 미제로 남았다. 반면 최근에 일어난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경우 과거와는 달리 환경보건 전문가들의 적극성이 상대적으로 돋보였다. 대표적으로 한국환경보건학회는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비용을 갹출하면서 2012년 1월부터 5월까지 피해 가정 74곳의 방문조사를 통해 95건의 피해 실태를 파악하고 분석한 뒤 ‘가습기살균제 피해의 노출 실태와 건강영향조사 보고서(2012.06)’를 펴냈다.38) 당시 조사연구는 이후 국제학술지에 2편의 논문으로 발표된다.39,40) 이런 활동은 2013년 정부가 가습기살균제 피해 신고 가정을 대상으로 공식 첫 조사를 하게 만드는 밑거름 역할을 했다. 이 사례는 앞으로 환경보건 위해 사건이 발생했을 때 전문가들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교범과도 같은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습기살균제가 처음 출시되고 사건이 드러나기까지 17년간 환경보건 전문가들을 포함한 관련 분야 전문가와 단체, 기관 어느 누구(곳)도 가습기살균제의 위해성에 대해 의심을 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참사를 예방하거나 더 일찍 발견하지 못한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둘째, 환경보건 사건 가운데 대부분은 전문가들이 발생을 예측해 사전예방하기 쉽지 않은 성격을 띠고 있다. 낙동강 페놀 오염 사고와 허베이스피리트호 기름유출 사고, 구미 ㈜휴브글로벌 불화수소 누출 사고 등은 돌발적 사고 성격이 짙어 이런 유형의 사고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이 사건 발생으로 인해 주민 등이 입을 건강 피해의 정도와 유해물질의 노출 정도에 따른 독성 여부와 강도에 대해 최대한 빠르고 정확하게 분석해 이를 효과적인 방식으로 알려주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와 관련해 적극적인 노력이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 특히 낙동강 페놀 오염 사고 때 지역∙중앙환경단체들이 앞다퉈 경쟁적 활동을 하면서 일부 환경단체가 물고기가 들어 있는 수조에 페놀을 투여해 폐사하는 모습을 보여준 일이 있었다. 이는 과학적 방법과 동물윤리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행위였다. 이에 전문가들은 당시 환경단체의 이런 퍼포먼스가 비과학적이라는 사실을 적극 알리는 비판적 대응을 하지 않음으로써 많은 대구 지역 주민들이 불안과 공포를 느끼게 만들었고 일부 임신부는 태아의 생명을 낙태시키는 반인륜적 일까지 벌어졌다. 따라서 앞으로 이와 유사한 일이 벌어질 경우 전문가들이 즉각 개입해 불필요한 공포와 불안이 조성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셋째, 지난 40여 년간 일어난 많은 환경보건 위해 사건∙사고에서 지역 주민 등과 결합한 시민단체나 환경단체의 역할이 매우 컸다. 하지만 온산병 사건 등에서 보듯이 시간이 흐를수록 이들 단체의 활동 동력이 약화해 결국은 주민들의 고통을 온전히 받아 이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이는 환경∙시민단체만의 문제는 결코 아니다. 전문가 집단도 마찬가지다. 환경보건 위해 사건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하나가 되어 원인과 피해 질환, 관련 제도의 문제점과 사건의 책임을 규명해야만 풀릴 수 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와 관련해서도 의학, 보건학, 독성학, 법학, 사회학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이 사건의 발생 원인과 해결과정, 그리고 사회적 교훈에 대해 지속적으로 조사∙연구하는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41) 이는 거의 모든 환경보건 사건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지적이다.
끝으로 미국 등에서는 화학물질 흡입 노출로 인해 간질성 폐질환이 직장에서 주로 일어났고, 가정에서도 가끔 발생했다는 보고가 있어 화학물질의 용도나 형태 변경으로 노동자 등 노출자들이 건강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을 1970~1980년대부터 인식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선진국에서는 가정용 가습기를 깨끗하게 유지하는 것을 강조하지만 물에 살생물제와 함께 섞어 사용하는 것은 금기로 여겼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노출 경로가 바뀌게 되면 심각한 건강 영향을 유발할 수 있다는 인식 없이 독성을 지닌 살균제 성분의 화학물질을 가습기로 확대해 사용했다는 외국 전문가의 비판42)은 기업과 정부뿐만 아니라 그 위험성을 조기에 경고하지 못한 전문가들도 귀담아 들어야 할 대목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198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5개의 우리나라 주요 환경보건 위해 관련 사건∙사고와 재난의 발생과 원인, 전개 과정과 대처 등에서 기업의 안전에 대한 투자와 정부의 치밀하고 엄격한 관리, 그리고 전문가의 적극적인 참여가 매우 중요함을 알 수 있었다.
범죄와 교통사고뿐만 아니라, 환경오염 피해 사건 등 인명∙건강 피해를 유발하는 모든 사건∙사고와 관련해 가장 중요한 것은 사전예방이다. 하지만 ‘위험사회’로 특징지을 수 있는 현대 사회에서 이들 위험의 완전한 예방은 달성하기 어려운 이상적 목표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사건∙사고가 재난과 같은 대규모로 일어나지 않도록 감시체계를 강화해 조기에 이를 알아차리는 사회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매우 중요해졌다. 즉 기업과 정부는 사고가 늘 일어날 수 있다는 전제 하에 이중∙삼중의 대응 시스템을 마련해 가동해야 하며 여기에 관련 인력을 충분히 투입하고 비용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이는 지금까지 살펴본 가습기살균제 참사 등 여러 환경위해 사건에서도 잘 드러났다.
또 사회와 시민들에게 큰 충격과 영향을 준 환경보건 위해 사건이 벌어지면 정부는 유사 사건∙사고 재발을 막기 위한 각종 제도 정비를 하고 관련 정책을 만들어 시행한다. 하지만 이는 매우 단편적이고 임시방편에 머무는 경우가 많아 실제 유사 사건∙사고의 재발을 막는데 실패한다. 1991년 낙동강 페놀 오염 사고 이전에도 수돗물 오염 사건이 일어났다. 1990년 트리할로메탄 파동과 1989년 중금속 검출 사건이 대표적인 보기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는 사건이 일어난 뒤 대응책을 마련하기보다는 이를 예방할 수 있는 더 근본적인 제도를 사전에 마련하거나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와 함께 환경보건 위해 사건∙사고가 벌어진 사회의 정치∙사회적 수준에 따라 원인 진상 규명과 피해 대책, 정책 대응이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도 지난 50년간 일어난 주요 사건 조명을 통해 파악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권위주의적이고 비민주적 성향이 강한 정치사회 체제일수록 사건∙사고 발생의 내막을 깊이 들여다보지 않고 대충 덮고 가는 경향이 강하고 개방되고 투명하며 민주적인 정치∙사회 체제일수록 원인 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에 힘쓴다는 것이다. 이는 그 사회를 구성하는 구성원들의 정치의식 수준과 생명과 안전을 중요하게 여기는 인식과 문화와 맥이 닿아 있다. 온산병이 드러난 1985년과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실체를 알게 된 2011년의 우리나라 정치∙사회 체제는 완전히 달랐으며 생명과 안전에 대한 시민의 관심이 높을수록 환경보건학자 등 전문가들도 더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뛰어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미래 한국에서는 급속한 산업 변화와 국민의 기대 수준에 걸맞은 대책이 선제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환경보건 전문가들은 환경보건 사건∙사고 원인 규명과 위해 분석뿐만 아니라 우리나라가 세계적 환경보건 모범국이 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갖추는데도 관심을 가지고 적극 관여해야 한다.
No potential conflict of interest relevant to this article was reported.
안종주(이사장)
Table 1 Cause, the scale and main contents of health damage, etc. by major environmental health disasters
Environmental health incident | Year | Cause | Hazardous agents | Health damage | Main content |
---|---|---|---|---|---|
Onsan disease | 1985 | Onsan industrial complex air pollution | Sulfur dioxide, heavy metals | 1,000 people suffered from neuralgia, general paralysis, and skin diseases | First environmental disease 7,467 households migrated collectively |
Nakdong river phenol contamination | 1991 | Doosan electronics phenol leakage | Phenol, chlorophenol | 13,000 Daegu citizens complained of increased abnormal symptoms | The opportunity to arouse national interest in the right to health and environment. |
Hebei Spirit oil spill accident | 2007 | Oil tanker oil spill | VOCs etc. | Volunteers and oil removers complained of various abnormal symptoms and mental health, increased asthma in children, etc. | 11 cities and counties declared special disaster zones, largest volunteer in history for oil removal |
Gumi hydrogen fluoride leakage | 2012 | Hydrogen fluoride leak from Hub Global, Gumi Industrial Complex | Hydrogen fluoride | 5 killed, 18 injured Medical examination for 12,243 residents | Korea’s largest chemical spill damage |
Humidifier disinfectant disaster | 1994~2011 | Use of humidifier disinfectant in humidifier | PHMG, PGH, CMIT/MIT | More than 4,258 people, including 1,027 deaths, were officially recognized by the government | The largest environmental health damage case in Korea |
pISSN 1738-4087
eISSN 2233-8616
Frequency: Bimonthly